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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사랑 이야기

왜 도형을 식으로 나타내는가?

작성자 : 수학사랑|조회수 : 6492

이 글은 저널 '수학사랑' 52호(2005년 9/10월호)에 실렸던 필자의 글을 조금 고친 것입니다.

 

따짐이: 선생님, 중학교 3학년에서 원주각이나 원과 비례 같은 것을 공부했는데요, 그런 내용은 더 이상 교과서에 나오지 않나요?

선생님: 어떤 식의 내용을 말하는 거지?

따짐이: 그러니까, 닮음이나 합동 같은 것을 이용해서 증명하고 하는 것...

선생님: 논증기하(synthetic geometry)?

따짐이: 그걸 논증기하라고 하나요?

선생님: 그렇지, 고대 그리스 시절부터 중요시되어 오던 분야이지. 교과서의 논증기하 내용은 대부분 그 때 이루어진 것이야. 그런데 그걸 더 공부하고 싶다는 말인가?

따짐이: 전에 TV 드라마에서 '메넬라우스의 정리' 라는 말이 갑자기 나와서 수학 좀 한다 하던 친구들이 못 알아듣고 자존심 상해 하더라구요.  그것도 논증기하에서 나오는 것 맞죠?

선생님: 그래.  학교에서 공부하는 것은 논증기하의 내용 중 아주 일부일 뿐이지. 학교에서는 그 정리들 자체를 아는 것보다 그것들을 통해서 수학이 이루어지는 방식을 이해하는 것이 목적이야.

따짐이: 어쨌든, 그런 방식으로 전에 증명된 사실들로부터 새로운 정리들을 증명해서 쌓아 올리는 게 재미있다고 생각했는데, 고등학교에서는 논증기하는 안 나오나 봐요?

선생님: 중학교까지의 내용으로 아까 말한 논증기하 학습의 목적은 달성할 수 있다고 보고 해석기하(analytic geometry)쪽으로 넘어가지.

따짐이: 좌표를 가지고 하는 것을 해석기하라고 하나 보죠?

선생님: 그래. 데카르트(R. Descartes, 1596-1650)가 시작한 일이니까 논증기하에 비하면 젊은(?) 학문이라 할 수 있으려나...

따짐이: 그런데, 교과서를 보면 원의 방정식 구하기, 방정식의 그래프 그리기, 접선의 방정식 구하기, 교점의 좌표 구하기 등등이 나와 있는데요, 그것들은 처음부터 좌표를 사용해서 원이나 직선의 방정식을 나타내는 일을 시작하지 않았으면 하지 않아도 될 일 아닐까요?

선생님: 그래서, 뭐가 불만이지?

따짐이: 아니, 그러니까, 좌표를 도입하고 도형을 방정식으로 나타내고 해서 뭐 새로운 것을 해낸 게 없는 것 아닌가... '해석기하를 위한 해석기하' 아닌가...

선생님: 만약 그랬으면 해석기하는 공부하고 있지 않았을 걸. 기초 부분이니까 도형과 식을 서로 '호환' 하는 연습을 주로 하고 있는 것뿐이야. 마치 구구단을 배울 때는 그것이 나눗셈이나 소인수분해에 사용된다는 것을 말해 주기 어려운 것과 비슷한 경우지.

따짐이: 그럼, 해석기하를 해서 얻은 성과를 좀 말해 주시면 안 될까요?

선생님: 이미 말한 적 있는데?

따짐이: 예? 언제요?

선생님: 네가 각의 삼등분 작도에 대해 질문했을 때.

따짐이: 그 때라면... 각의 삼등분 작도가 안 된다는 내용으로 말씀해 주시면서... 그런 문제들이 1800년대에 방정식에 대한 이론으로 해결되었다고 하셨죠?

선생님: 그래, 바로 그거야.

따짐이: 그럼 그 방정식이 도형의 방정식?

선생님: 도형의 방정식이라는 것이 따로 있는 건 아니지만, 자와 컴퍼스를 가지고 하는 작도는 직선과 원의 방정식을 사용해서 완전히 나타낼 수 있지. 특히 두 직선이나 두 원, 또는 한 직선과 한 원의 교점을 작도하는 것은 그 방정식들을 연립해서 푸는 것으로 나타낼 수 있고.

따짐이: 제 말이 그 말이거든요. 그냥 직선과 원을 가지고 하던 일을, 좌표축을 잡고 x, y 좌표에 대한 방정식으로 나타낸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냐고요.

선생님: 뭐가 달라지냐 하면, 도형으로는 증명 못하던 것을 방정식에서는 증명할 수 있다는 것이지. 다시 말해 삼각형의 합동이나 닮음 등등을 가지고 삼등분선 작도가 안 된다는 것은 증명 못했지만, 직선이나 원의 방정식을 연립하여 만든 연립방정식의 해를 구할 때 삼등분선 작도에 필요한 값이 절대로 나오지 않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증명할 수는 있었다는 거야.

따짐이: 음... 그랬군요. 더 공부를 하면 도형으로 할 수 없는 일을 방정식으로 할 수 있게 되겠지요?

선생님: 교과서에 있는 것 중에서 예를 들면, 파푸스의 중선정리 같은 것은 논증기하적으로 증명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해석기하적으로 증명하면 훨씬 쉽지. 교과서에 그것을 소개한 것이 해석기하가 유용하다는 하나의 예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돼.

따짐이: 하긴, 같은 문제라도 그냥 푸는 것보다 좌표를 사용해서 푸는 것이 쉽다고 느껴질 때도 많이 있더군요. 왜 그럴까요?

선생님: 예를 들어 원뿔을 비스듬히 자른 단면이 타원이라는 것을 논증기하적으로 증명하려면 정말 아폴로니우스(Apollonius of Perga, BC 262?-BC 190?) 같은 대가가 아니면 갖기 어려운 직관을 발휘해야 하지. 하지만 좌표공간에서 x, y, z 좌표를 가지고 원뿔을 방정식으로 나타내고 평면을 방정식으로 나타내고 그 것을 연립하여 푸는 것은 사실상 고정된 절차이지. 다시 말해 그 문제를 푸는 방법을 따로 '발명' 할 필요가 없다는 거야. 해석기하는 기하를 이른바 '번뜩이는 아이디어'에 의존하는 학문에서 웬만큼 훈련을 쌓은 사람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학문으로 바꾸어 놓았다고도 할 수 있어. 비록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생각해냈을 때의 즐거움을 맛볼 기회는 해석기하에서는 별로 없지만 말이야. 컴퓨터로 도형을 그리거나 교점을 구하고, 근사적으로나마 기하 문제를 풀 수 있는 것도 좌표가 있고 해석기하가 있기 때문이지.

따짐이: 역시, 따지면 따질수록 수학은 대단하군요. 사람들이 따져볼 생각을 잘 안 해서 그렇지... 그건 그렇고, 반대의 경우는 없을까요? 식으로 할 수 없는 일을 도형으로 할 수 있는 것...

선생님: 그건 교과서에서도 많이 봤을 걸. 논증기하에서 이미 밝혀 놓은 정리들을 사용하여 식으로 풀기 어려운 방정식의 해의 개수나 부등식의 해의 범위, 최대·최소 문제 같은 것을 쉽게 해결하는 경우가 있지. 그런 문제들은 전체를 파악해야 하고, 그런 면에서는 아무래도 식보다는 도형으로 나타내는 것이 유리하니까.


선생님: 사실, 도형을 이용해 문제를 쉽게 파악하고 해결하는 경우는 알게 모르게 많이 있어. 연립부등식의 해집합을 구할 때 수직선 위에 각각의 부등식의 해집합을 표시하여 교집합을 구하는 것도 그런 경우지.


교과서에서 새로운 함수를 배울 때마다 그 함수의 그래프 그리기나 그래프를 보고 식 구하기 등을 열심히 연습하도록 되어 있는 것도, 식과 도형을 왔다 갔다 함으로써 할 수 있는 일들이 많고, 그것들이 수학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기 때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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