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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카르트/Rene Decartes

작성자 : 수학사랑|조회수 : 2435

데카르트(1596~1650)


프랑스의 철학자·수학자·물리학자. 투렌라에 출생.

근세사상의 기본틀을 처음으로 확립함 으로써 근세철학의 시조로 일컬어진다.

그는 세계를 몰가치적(沒價値的)·합리적으로 보는 태도(과학적 자연관)를 정신의 내면성의 강조(정신의 형이상학)와 연결지워 이를 이원론(二 元論)이라고 하였다. 이원론은 동시에 근세사상 전체에 통하는 이원성의 표현이다.
프랑스 중부의 관료귀족 집안 출신으로 생후 1년 만에 어머니와 사별하고 10세 때 예수회의 라 플레슈학원에 입학, 프랑수아 베롱에게 철학을 배웠다.
1616년 푸아티에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했다. 학교에서 배운 스콜라적 학문에 불만, 세상을 통해 배울 것을 결심하고 여행에 나섰다.
18년에는 지원장교로서 네덜란드군에 입대했다.
수학자 베이크만과 알게 되어, 물리수학적 연구에 자극을 받아 '보편수학(普遍數學)'의 구상에 이르렀다.
20년 군대를 떠나 유럽 각지를 전전하다가 25년부터 파리에 체재, 광학(光學)을 연구한 끝에 '빛의 굴절법칙'을 발견하였다.

29년 이후에는 네덜란드에 은거하며 철학연구에 몰두하여 형이상학 논문 집필 에 종사하였으나, 같은해 3월 제자로부터 환일(幻日) 현상의 해명을 요청받고 중도에 자연연 구로 전향, 결국 자연학(自然學)을 포괄하는 《우주론:Le Trait de la monde》의 구상으로 발전하였다.
그러나 이 논문의 완성단계에 G.갈릴레오의 단죄사실(斷罪事實)을 듣고, 지동설을 주내용으로 한 이 책의 간행을 단념, 그 대신 37년 《방법서설(方法敍說)》 및 이를 서론으로 하는 《굴절광학》 《기상학》 《기하학》의 세 시론 (試論)을 출간하였다. 41년 형이상학의 주저 《성찰록》, 44년에는 《철학의 원리》를 출간하였다.
이를 전후하여 데카르트 사상의 혁신성이 세상의 주목을 받기 시작, '자유로운 나라'였던 네덜란드도 캘빈파 (派) 신학자들의 박해로 살기 어려운 곳이 되었다.
그 무렵 스웨덴의 크리스티나 여왕으로부 터 초청을 받아 49년 가을 스톡홀름으로 가서 지내던 중 폐렴에 걸려 생애를 마쳤다.
근대 철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데카르트는 수학자로서는 기하학에 대수적 해법을 적용한 해석기하학의 창시자로 알려졌다.


물체에는 무게라는 실재적 성질이 있기 때문에 떨어지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하는 스콜라적 자연학에 만족하지 못하고, 물리 수학적 연구를 통하여 물질, 즉 연장(延長)이라는 기계론적 자연관으로 이끌려 갔다.
그의 형이상학적 사색은 이른바 방법적 회의(懷疑)에서 출발한다.
학문에서 확실한 기초를 세우려 하면, 적어도 조금이라도 불확실 한 것은 모두 의심해 보아야 하는데, 세계의 모든 것의 존재를 의심스러운 것으로 치더라도 이런 생각, 즉 의심을 하는 자신의 존재만은 의심할 수가 없다.
그리하여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cogito, ergo sum)'라는 근본원리가 《방법서설》에서 확립되어, 이 확실성에서 세계에 관한 모든 인식이 유도된다. 의심하고 있는 불완전한 존재에서 무한히 완전한 존재자의 관념이 결과할 리가 없다는 데서 신의 존재가 증명되고, 신의 성실이라는 것을 매개로 하여 물체의 존재도 증명된다.
더욱이 정신은 사고하는 것만으로, 다시 말하면 신체 없이도 존재할 수 있기 때문에 심신의 실재적 구별도 확정된다.
이리하여 정신과 물체가 서로 독립된 실체로 세워지고 이 물심이원론에 의해 기계론적 자연관의 입장의 기초가 마련된다.

그러나 인간에게서 심신결합의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면 도덕의 문제를 풀 수 없기 때문에, 이 물심분리와 심신결합의 모순 조정에 데카르트 이후 형이상학의 주요한 관심이 쏠리게 되었다.

 

데카르트 : '내가 푼 문제마다 이후 다른 문제를 푸는 데 도움이 되는 규칙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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