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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용

작성자 : 수학사랑|조회수 : 2215

홍대용 (1731(영조 7) ~ 1783(정조 7))


홍대용(1731~1783년)은 조선 시대 실학파 학자 가운데에서도 가장 진취적인 사상가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는 중국의 북경에서 서양 문물을 견학하면서 유럽 과학을 체험하게 되었다.
그래서 동양의 음양오행설을 부정하고 지구 자전설을 논하기도 했다.
경제 정책에서는 균전제, 부병제를 토대로 농민의 생활을 보장할 것을 주장했다.
또한 학문과 재주가 많은 사람을 신분에 관계없이 등용하고 과거제를 폐지하고 하급 교육 기관에서 재능이 있는 사람을 추천하는 제도를 제창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마을마다 학교를 설치하고 8세이상의 어린이 모두 취학시켜야 한다는 혁명적인 의무 교육제를 주장했다.
또 신분에 관계없이 청소년은 모두 노동에 종사해야 한다는 것과, 공평한 발언권을 보장하고 언론의 평등을 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홍대용은 그의 집안에 사설천문대까지 꾸며놓을 정도로 실천적인 과학자이기도 했다.
그는 수학자라기보다는 진보적인 과학자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가 쓴 책들을 보면 수학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대단했던 것을 알 수 있다.
홍대용의 가장 대표적인 저서인 <담헌서>의 외집 4~6권 <주해수용>에서는 수학과 천문학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주해수용>의 서문을 보면 그의 수학관이 잘 나타나 있다. 서문에서 그는 그때까지의 수학책이 <구장산술>의 범위와 방법을 벗어나지 못한 것을 비판하면서 수학이 새로운 창조와 경험에 의해서 새롭게 풍부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해수용>에서 그는 수학을 배우는 목적은 사고 능력을 길러 품성을 형성하는데 있다고 하면서 특히 수학을 창조적으로 학습해야 한다고 말했다.
홍대용은 <수학계몽><수학통종><수법전서><구장산술>이외의 많은 책을 참고로 하여 정리하고 연구하여 당시 수학을 집대성했다.
우리 나라와 중국 수학의 성과와 서양수학의 성과를 수집하여 정리, 발전시켰다.
홍대용의 수학수준은 대단히 높았다. 당시 수학의 거의 모든 부분을 망라했을 뿐만 아니라 그것들의 결점까지 발견하고 분석했다.

그 내용도 비율법, 약분법, 면적 체적 등 근대적인 표현들을 썼다. 또한 그것은 실제로 필요로 하는 지식만을 대상으로 하는 그의 현실주의적이고 합리적인 기본 태도를 나타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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